황홀경과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금강산과 금강산 그림
금강산은 기이한 암봉들과 계곡들이 천하제일의 비경을 연출하는 명산이다. 우뚝하게 선 바위,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와 전나무,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봉우리들, 암반 계곡으로 굽이치며 떨어지는 물길 등은 옛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문인들은 좋은 산수를 유람하고 자연을 호흡하기를 원했고, 유람이 어렵다면 그림이라도 걸어놓고 싶어 했다. 이러한 열망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많은 이가 금강산을 가보기를 원한다.
『금강산을 그리다』는 옛 화가들이 화폭에 담아낸 금강산 그림과 다섯 번에 걸쳐 금강산을 탐승한 저자의 생생한 유람기가 어우러진 생동감 넘치는 미술서다. 저자가 두 눈에 담아낸 금강산 풍경과 화가들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절경, 여기에 더해진 옛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은 예술적 정취를 느끼게 한다.
내금강부터 해금강까지
옛 그림으로 금강산을 한눈에 품다
금강산은 동서로 외금강과 내금강으로 나뉘며 남북으로 신금강과 별금강, 그리고 동해의 해금강으로 구성된다. 내금강과 외금강은 비로봉과 연이은 백두대간의 산맥을 축으로 나눈 것인데, 외금강의 유점사를 내외의 경계로 삼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금강산을 내금강과 외금강, 해금강으로 나누어 옛 화가들의 그림 속에 담긴 각각의 명소들을 따라간다. 토산이 골산을 감싼 형태인 내금강, 토산 위에 골산 바위들이 솟아 있는 외금강, 외금강의 줄기가 평야를 이루다 다시 솟은 해금강은 이 책에서 글과 그림으로 살아 숨 쉰다. 1998년부터 2018년까지 금강산을 탐승한 저자는 직접 카메라로 담은 실경 이미지를 제시하고, 그곳이 옛 화가들의 손에서 어떻게 재탄생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금강산의 각 명소의 변천 과정을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표훈사, 유점사, 신계사와 함께 금강산의 4대 사찰로 꼽히는 장안사 앞에는 ‘비홍교’라 불리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가 자리했다. 겸재 정선은 장안사를 그릴 때 반드시 비홍교를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정선과 동시대에 활동한 심사정이나 김윤겸의 그림에도 육중한 모습의 비홍교가 등장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김하종이 그린 그림에는 일자로 놓인 나무다리로 표현되어 있다. 큰 홍수로 다리가 무너지고 1792년 중건될 때까지 나무를 잇댄 다리가 임시로 사용된 것이다. 현재는 콘크리트 다리로 대체되어 이전의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화가들의 작품 속에 생생하게 재현된 금강산의 명소를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해온 금강산의 모습을 추척해갈 수 있다.
한 권으로 담아낸 금강산의 명소와 그림
저자는 금강산에 방문할 때마다 많은 양의 금강산 그림과 자료를 새롭게 발굴했고, 모든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각 장소의 특징과 그곳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를 토대로 그림 속 금강산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활자로만 나열된 장소들이 아닌 그림과 경험에서 살아 숨 쉬는 금강산을 접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수백 년 전 옛 화가들이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담아낸 금강산의 수많은 명소를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책 속에서
금강산은 불교와 관련된 유적뿐 아니라 그림과 글씨, 기행시문과 민간전설 등 여러 문화유산을 창출한 근원이기도 하다. 금강산이 처음 그려진 시기는 대략 고려 말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의 불교 사회에서 조선의 유교 사회로 전환되며 그림 제작은 한층 활발해졌다. 성리학의 이상을 추구한 조선의 사대부 문인들은 풍류를 즐기며 심신을 수양하는 터로 금강산을 꼽았다. _그림으로 새롭게 태어난 금강산
정선의 절정기 화풍을 보여 주는 그림은 72세에 그린 《해악전신첩》의 <금강내산>과 그보다 더 말년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선면금강내산>이다. 이 그림들에는 능수능란한 필묵의 아름다움과 2개의 붓을 한 손에 쥐고 순식간에 그려 내는 겸재 특유의 양필법이 잘 드러난다. 부채에 그려진 <선면금강내산>은 단오절 풍속과도 관련되어 정선의 그림이 폭넓게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 후기에는 단오절에 단오선이라는 부채를 만들고 그 위에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리는 풍속이 유행했다. 여기에는 금강산의 시원하고 상서로운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물리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_금강산 전체를 담은 <금강전도>
정양사는 고려 태조 왕건(재위 918~943)과의 특별한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개국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먼저 금강산을 찾았을 때, 갑자기 멀리서 담무갈보살이 빛을 발하며 나타났다. 왕건은 이를 보고 깜짝 놀라 황급히 엎드려 절을 하고 그 자리에 정양사를 세웠다. 이때 담무갈보살의 빛이 발한 곳을 ‘방광대’라 이름 짓고 왕건이 엎드려 절을 한 고개는 ‘배점’이라고 하였다. 이 일화는 고려시대 칠그림으로도 표현되었다.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화승 노영이 그린 <담무갈·지장보살현신도>의 윗부분에는 왕건이 금강산에서 담무갈보살과 여러 권속을 보고 엎드려 절하는 장면이 보인다. 담무갈보살 옆으로 휘장을 두른 듯 솟아 있는 봉우리들은 금강산을 나타낸다._정양사: 내금강 봉우리들을 한눈에 품다
조선시대 만물초 그림들은 대부분 전경에 삼선암의 세 바위를 세우고 그 뒤로 멀리 수많은 봉우리를 그려 넣었다. 김홍도의 전칭작인 <만물초>가 좋은 사례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실감을 살리다 보니 삼선암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19세기에 제작된 작가미상의 <만물초>에서는 전경에 우뚝 선 삼선암 봉우리가 뚜렷하며, 그 뒤로 화면을 가득 채운 봉우리들 사이에 머리에 관을 쓴 사람이나 붓, 집 같은 형상의 봉우리들이 섞여 있다. 이처럼 자연물을 사람이나 사물의 모습에 빗대 표현하는 경향은 정선의 그림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선은 종종 봉우리나 바위를 사람이나 동물 형상처럼 그려 내곤 했다._만물초: 봉우리들의 기이함을 노래하다
19세기 금강산도는 18세기 금강산도의 변주곡을 연주하듯, 일정한 규범 안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김홍도의 화풍은 필선이 가늘고 유연하며 농담의 변화가 섬세한 특징을 지닌다. 이와 달리 19세기 문인 화가 이의성은 이리저리 꺾인 기하학적 선묘와 맑고 가벼운 담채로 암봉의 질감을 간결하게 표현했다.도3 화원 김하종은 서로 다른 화풍으로 구룡폭포를 두 번 그렸다. 1816년에는 강렬하고 진한 필묵으로 바위와 폭포의 기세를 강조한 반면, 1865년에는 연한 갈필로 쓸어내린 듯 칠해진 바탕에 중간먹과 농묵의 짧은 부벽준을 중첩시켜 바위의 질감을 표현하였다.도4, 도5 가는 필선과 먹이 이어졌다 끊어지고 뭉쳤다 흘러내리는 표현은 마치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_구룡폭포: 아홉 마리 용의 피신처
삼일포가 36개의 봉우리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정선과 심사정, 그리고 후대에 이들을 계승한 이방운과 김하종 등의 그림에 잘 나타난다. 정선은 1711년 작 <사선정>에서 동해를 배경으로 왼편에 산세를 배치하는 편파 구도를 활용했다.도1 심사정의 <고성삼일포>에는 사선정이 있는 조그만 바위섬이 호수 중앙에 있고 주변으로 낮은 모래톱과 수많은 봉우리가 들고 나는 경관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도2 이와 달리 가지런히 그려져 있다._삼일포: 네 신선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닐다


황홀경과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금강산과 금강산 그림
금강산은 기이한 암봉들과 계곡들이 천하제일의 비경을 연출하는 명산이다. 우뚝하게 선 바위,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와 전나무,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봉우리들, 암반 계곡으로 굽이치며 떨어지는 물길 등은 옛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문인들은 좋은 산수를 유람하고 자연을 호흡하기를 원했고, 유람이 어렵다면 그림이라도 걸어놓고 싶어 했다. 이러한 열망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많은 이가 금강산을 가보기를 원한다.
『금강산을 그리다』는 옛 화가들이 화폭에 담아낸 금강산 그림과 다섯 번에 걸쳐 금강산을 탐승한 저자의 생생한 유람기가 어우러진 생동감 넘치는 미술서다. 저자가 두 눈에 담아낸 금강산 풍경과 화가들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절경, 여기에 더해진 옛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은 예술적 정취를 느끼게 한다.
내금강부터 해금강까지
옛 그림으로 금강산을 한눈에 품다
금강산은 동서로 외금강과 내금강으로 나뉘며 남북으로 신금강과 별금강, 그리고 동해의 해금강으로 구성된다. 내금강과 외금강은 비로봉과 연이은 백두대간의 산맥을 축으로 나눈 것인데, 외금강의 유점사를 내외의 경계로 삼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금강산을 내금강과 외금강, 해금강으로 나누어 옛 화가들의 그림 속에 담긴 각각의 명소들을 따라간다. 토산이 골산을 감싼 형태인 내금강, 토산 위에 골산 바위들이 솟아 있는 외금강, 외금강의 줄기가 평야를 이루다 다시 솟은 해금강은 이 책에서 글과 그림으로 살아 숨 쉰다. 1998년부터 2018년까지 금강산을 탐승한 저자는 직접 카메라로 담은 실경 이미지를 제시하고, 그곳이 옛 화가들의 손에서 어떻게 재탄생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금강산의 각 명소의 변천 과정을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표훈사, 유점사, 신계사와 함께 금강산의 4대 사찰로 꼽히는 장안사 앞에는 ‘비홍교’라 불리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가 자리했다. 겸재 정선은 장안사를 그릴 때 반드시 비홍교를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정선과 동시대에 활동한 심사정이나 김윤겸의 그림에도 육중한 모습의 비홍교가 등장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김하종이 그린 그림에는 일자로 놓인 나무다리로 표현되어 있다. 큰 홍수로 다리가 무너지고 1792년 중건될 때까지 나무를 잇댄 다리가 임시로 사용된 것이다. 현재는 콘크리트 다리로 대체되어 이전의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화가들의 작품 속에 생생하게 재현된 금강산의 명소를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해온 금강산의 모습을 추척해갈 수 있다.
한 권으로 담아낸 금강산의 명소와 그림
저자는 금강산에 방문할 때마다 많은 양의 금강산 그림과 자료를 새롭게 발굴했고, 모든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각 장소의 특징과 그곳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를 토대로 그림 속 금강산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활자로만 나열된 장소들이 아닌 그림과 경험에서 살아 숨 쉬는 금강산을 접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수백 년 전 옛 화가들이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담아낸 금강산의 수많은 명소를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책 속에서
금강산은 불교와 관련된 유적뿐 아니라 그림과 글씨, 기행시문과 민간전설 등 여러 문화유산을 창출한 근원이기도 하다. 금강산이 처음 그려진 시기는 대략 고려 말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의 불교 사회에서 조선의 유교 사회로 전환되며 그림 제작은 한층 활발해졌다. 성리학의 이상을 추구한 조선의 사대부 문인들은 풍류를 즐기며 심신을 수양하는 터로 금강산을 꼽았다. _그림으로 새롭게 태어난 금강산
정선의 절정기 화풍을 보여 주는 그림은 72세에 그린 《해악전신첩》의 <금강내산>과 그보다 더 말년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선면금강내산>이다. 이 그림들에는 능수능란한 필묵의 아름다움과 2개의 붓을 한 손에 쥐고 순식간에 그려 내는 겸재 특유의 양필법이 잘 드러난다. 부채에 그려진 <선면금강내산>은 단오절 풍속과도 관련되어 정선의 그림이 폭넓게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 후기에는 단오절에 단오선이라는 부채를 만들고 그 위에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리는 풍속이 유행했다. 여기에는 금강산의 시원하고 상서로운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물리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_금강산 전체를 담은 <금강전도>
정양사는 고려 태조 왕건(재위 918~943)과의 특별한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개국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먼저 금강산을 찾았을 때, 갑자기 멀리서 담무갈보살이 빛을 발하며 나타났다. 왕건은 이를 보고 깜짝 놀라 황급히 엎드려 절을 하고 그 자리에 정양사를 세웠다. 이때 담무갈보살의 빛이 발한 곳을 ‘방광대’라 이름 짓고 왕건이 엎드려 절을 한 고개는 ‘배점’이라고 하였다. 이 일화는 고려시대 칠그림으로도 표현되었다.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화승 노영이 그린 <담무갈·지장보살현신도>의 윗부분에는 왕건이 금강산에서 담무갈보살과 여러 권속을 보고 엎드려 절하는 장면이 보인다. 담무갈보살 옆으로 휘장을 두른 듯 솟아 있는 봉우리들은 금강산을 나타낸다._정양사: 내금강 봉우리들을 한눈에 품다
조선시대 만물초 그림들은 대부분 전경에 삼선암의 세 바위를 세우고 그 뒤로 멀리 수많은 봉우리를 그려 넣었다. 김홍도의 전칭작인 <만물초>가 좋은 사례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실감을 살리다 보니 삼선암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19세기에 제작된 작가미상의 <만물초>에서는 전경에 우뚝 선 삼선암 봉우리가 뚜렷하며, 그 뒤로 화면을 가득 채운 봉우리들 사이에 머리에 관을 쓴 사람이나 붓, 집 같은 형상의 봉우리들이 섞여 있다. 이처럼 자연물을 사람이나 사물의 모습에 빗대 표현하는 경향은 정선의 그림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선은 종종 봉우리나 바위를 사람이나 동물 형상처럼 그려 내곤 했다._만물초: 봉우리들의 기이함을 노래하다
19세기 금강산도는 18세기 금강산도의 변주곡을 연주하듯, 일정한 규범 안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김홍도의 화풍은 필선이 가늘고 유연하며 농담의 변화가 섬세한 특징을 지닌다. 이와 달리 19세기 문인 화가 이의성은 이리저리 꺾인 기하학적 선묘와 맑고 가벼운 담채로 암봉의 질감을 간결하게 표현했다.도3 화원 김하종은 서로 다른 화풍으로 구룡폭포를 두 번 그렸다. 1816년에는 강렬하고 진한 필묵으로 바위와 폭포의 기세를 강조한 반면, 1865년에는 연한 갈필로 쓸어내린 듯 칠해진 바탕에 중간먹과 농묵의 짧은 부벽준을 중첩시켜 바위의 질감을 표현하였다.도4, 도5 가는 필선과 먹이 이어졌다 끊어지고 뭉쳤다 흘러내리는 표현은 마치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_구룡폭포: 아홉 마리 용의 피신처
삼일포가 36개의 봉우리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정선과 심사정, 그리고 후대에 이들을 계승한 이방운과 김하종 등의 그림에 잘 나타난다. 정선은 1711년 작 <사선정>에서 동해를 배경으로 왼편에 산세를 배치하는 편파 구도를 활용했다.도1 심사정의 <고성삼일포>에는 사선정이 있는 조그만 바위섬이 호수 중앙에 있고 주변으로 낮은 모래톱과 수많은 봉우리가 들고 나는 경관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도2 이와 달리 가지런히 그려져 있다._삼일포: 네 신선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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