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큐레이터로서 오랜 시간 미술 곁에 머무른 조아라
미술이 자신을 붙잡았던 순간을 진솔하게 기록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전시와 관련된 일을 10년 넘게 해 온 조아라. 그가 미술을 업으로 택한 계기는 “어떤 시대의 한 사람이 그려 낸 장면이 시공을 초월해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작품을 뚫고 나와 소통하려는 예술가의 간절한 바람과 그 간절함을 감싼 아름다움은 그를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예술가, 큐레이터, 설계 및 공사팀, 작품 운송 등 수많은 관계자의 의견을 조율해 정리하며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의 의도가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애쓰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점차 변화가 생긴다. 일의 고단함으로 작품의 아름다움과 예술가의 위대함을 마음껏 찬미하며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던 마음을 잊어버리게 된 것. 이렇듯 예술이 단지 애호의 대상이 아니라 일이 되면서 생겨버린 이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 조아라는 기록을 택한다. 미술을 사랑했고 또 여전히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본인만의 언어로 마음껏 예술과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재 활동 중인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비롯해 회화, 조각, 설치 등 폭넓은 장르의 미술을 아우르는 이야기를 통해, 그가 미술과 소통하며 생각을 넓히고 감정을 가꾼 순간들을 접하면서 우리를 붙잡는 미술의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이해 못 할 모순에 휩싸이거나 벗어나고픈 갈망을 마주할 때…
마음을 알아주는 미술을 만나다
삶 전반에서 미술과 가까이 지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술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마주하거나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준다. 곁에서 위안과 힘을 주는 미술의 면모는 여러 작가 및 작품과 교제한 조아라의 일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성을 쏟아 준비한 전시 개막 시기. 온갖 신경이 곤두선 찰나에 윤석남 작가의 바닥까지 팔을 길게 늘어뜨린 채 천장에 매달린 나무 조각 작품은 ‘닿고 싶지만 완전히 뛰어들고 싶진 않은 회피하고픈 마음’을 헤아려준다. 반복되는 육아에 지칠 때, 예술가 바이런 킴이 캔버스에 매일같이 그린 평범한 하루의 하늘은 사소한 오늘과 작은 노력에 숭고함을 일깨운다. 소심한 스스로가 갑갑할 무렵, 점과 선을 모아 자유로움을 구현한 박광수의 작품을 감상하며 작업 과정에 이입해보는 일은 해방감을 전해준다.
이처럼 조아라는 진공 상태가 아닌 자신의 현실을 바탕으로 미술을 감상한다. 지금의 상황과 감정에서 출발해 작품과 예술가와 만나며 섞인다. 진지하고 깊이 있게 미술과 소통하는 자신만의 화술을 드러내며, 미술과 친밀히 관계 맺고 동행하는 법을 일러준다.
순간이자 영원으로서 미술
그치지 않는 질문이 선사하는 새로운 순간에 대하여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와 정적인 인물 스케치로 현대 도시인이 소외감과 고독함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 그와 그의 작품은 광고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서 소개된 바 있어 사람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를 비롯해 반 고흐와 모네 그리고 인상주의 등등, 비교적 친숙한 작가와 작품 그리고 미술 사조는 비슷한 수사로 불리고 전달되기를 반복하면서 특정한 모습으로 굳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작가와 작품의 운명은 한때의 인상과 해석에 머물다가 새로운 작가 및 작품에 밀려 결국엔 잊히고 마는 걸까. 조아라는 이렇게 비관적이고 어두운 결말을 거부한다. 그 대신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과 팬데믹 상황과 연결지어 작품의 의미가 시의성을 띠도록 갱신한다. 또한 한 번 어쩌면 그 이상의 횟수로 접했을 법한 모네와 반 고흐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신화와 위인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통찰로 보편성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변하는 시대를 반영해 작품의 의미를 다시 쓰고 다른 입장과 관점에서 미술을 사유하며, 즉 질문을 그치지 않으며 미술이 끝없이 새로운 순간에 자리할 수 있게끔 한다.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어 주는 듯한 건초더미들. 시간대를 유추하게 하는 그림자의 모양과 색채의 변화. 이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사라진 ‘찰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이 시시각각으로 변해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의 ‘영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인상주의를 통해 수확하고 남은 건초더미가 비로소 회화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는 그것으로 순간과 영원의 이야기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_「건초더미에서 본 순간과 영원」 중에서
200자 요약
갤러리, 미술관, 박물관에서 10년 동안 미술과 엮여 일한 큐레이터 조아라의 에세이. 그는 “어떤 시대의 한 사람이 그려 낸 장면이 시공을 초월해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해 미술에 매료되었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큐레이터로 일하던 시절 그리고 일상 등 미술 곁에 머무는 동안 접했고 마음을 내주었던 작품과 예술가를 소개하며, 미술이 자신에게 말을 걸던 순간과 그 말을 들으며 미술에 붙들렸던 장면을 진솔한 언어로 풀어낸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질문을 던지게끔 하고, 새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미술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책 속에서
바이런 킴은 순간과 영원, 친숙한 일상과 광대한 우주처럼 언뜻 멀게 느껴지는 개념들을, 작품을 통해 연결하여 보여 준다. 그리고 그 특유의 방식으로 작품화된 결과물은 매우 시적이다. (...) ‘사소한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어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작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흘려보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붙잡아 무대의 중심에 세우는 태도,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것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하는 메시지. 이는 나의 사소한 오늘과 작은 노력을 숭고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위안을 준다. 나는 오늘도 습관적으로 하늘의 모습을 휴대폰에 남긴다. 그리고 함께 기록한다.
- 매주 일요일의 #하늘스타그램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면 이미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는 작가들과 직접 만날 기회도 많다. 특히 나는 내 또래의 작가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 그들의 끈질긴 도전에 항상 고개가 숙어지곤 했다. 변화나 도전 앞에서 소심한 나에게는 캔버스 하나하나가 새로운 도전인 그들의 삶이 항상 관찰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는 자주 상상한다. 흰 바탕 위에 첫 스케치나 붓 터치를 하는 작가가 되어 ‘대리 탐험’과 ‘대리 도전’을 하는 거다. 예술가가 만들어 낸 흔적이 켜켜이 쌓이고, 완성 단계에 다다르기까지 그가 경험했을 ‘해방으로 가는 과정’에 빠져든다. 그렇게 홀로 상상하며 그 경이로움을 만끽한다.
- 때론 헤매는 것도 괜찮아
부르주아의 작품에는 항상 모순적 은유가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 바로 〈마망〉이다. 청동으로 엮인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가 몸에 알주머니를 품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행인들이 조각의 안팎을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멀리서 주변 환경과 함께 조각 전체를 관망할 때와 작품 안에 들어가서 가까이 보고 느낄 때의 인상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주 멀리서 보면, 그 주변을 둘러싼 도시 풍경과 행인들이 만들어 내는 크고 작은 움직임 속에서 혼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존재하는 위용이 느껴진다. 하지만 거미 조각의 내부에 들어가 그가 품고 있는 하얀 알들과 꼿꼿하게 힘준 다리를 마주할 때는 온 힘을 다해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는 듯한 간절함을 느끼게 되어 안쓰러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 엄마 거미의 위태로운 위용
처절한 실패는 숨기거나 가릴 대상이 아니라, 드러내며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불의 눈부신 개와 비행선. 그녀의 이러한 작품은 아픈 사건들을 따뜻하면서도 냉정하게 돌아볼 때 우리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든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힌트들이다. 다양한 재료들과 의미 있는 사건을 엮어 빛나는 존재로 변모시키는 작가 이불만의 언어는 그 규모와 방식을 달리하며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 좌절을 빛으로 기억하기
엘리아슨의 작품 활동을 담은 ‘아티스트 북’의 제목이자, 그가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철학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당신의 참여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Your Engagement Has Consequences).” 작품을 만들고 제시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작품을 경험하는 관람자의 참여가 있어야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사회를 생각하는 관점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준다. ‘당신의 의견, 당신의 움직임이 내게는 너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예술에 어떤 사람이 등을 돌릴 수 있을까? 엘리아슨은 지금도 재료와 크기, 장르를 오가는 흥미롭고 다채로운 실험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항상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영리하고 아름다운 친구와도 같다. 우선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압도하고, 서서히 궁금하게 만들고,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그것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나를 새로운 영감으로 가득 채워 주기 때문에.
-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인상주의를 통해 수확하고 남은 건초더미가 비로소 회화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는 그것으로 순간과 영원의 이야기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신화나 위인이 아니더라도 지푸라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망막에 맺히는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인상주의의 인기에 더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 건초더미에서 본 순간과 영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내려오는 색색의 아름다운 빛줄기를 보며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듯, 다양한 컬러와 리드미컬한 제스처가 뒤섞여 한 폭의 장관을 만들어 내는 김미영의 화면은 누군가에겐 바람 부는 들판이고, 누군가에겐 눈보라 치는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작가 김미영이 만든 창문을 들여다볼 때마다 기억의 풍경과 마주한다. 어릴 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맡았던 아카시아 향기, 크로아티아의 어느 작은 섬에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 타던 스무 살의 어느 순간, 황금색 가을 들판 앞에서 아이와 물 뿌리며 놀던 날의 기억 등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너무 많은 힌트를 제공하지 않는 김미영의 추상화가 나를 오랜 시간 붙잡아 둔 이유다.
- 그림에서 바람이 불어와


큐레이터로서 오랜 시간 미술 곁에 머무른 조아라
미술이 자신을 붙잡았던 순간을 진솔하게 기록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전시와 관련된 일을 10년 넘게 해 온 조아라. 그가 미술을 업으로 택한 계기는 “어떤 시대의 한 사람이 그려 낸 장면이 시공을 초월해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작품을 뚫고 나와 소통하려는 예술가의 간절한 바람과 그 간절함을 감싼 아름다움은 그를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예술가, 큐레이터, 설계 및 공사팀, 작품 운송 등 수많은 관계자의 의견을 조율해 정리하며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의 의도가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애쓰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점차 변화가 생긴다. 일의 고단함으로 작품의 아름다움과 예술가의 위대함을 마음껏 찬미하며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던 마음을 잊어버리게 된 것. 이렇듯 예술이 단지 애호의 대상이 아니라 일이 되면서 생겨버린 이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 조아라는 기록을 택한다. 미술을 사랑했고 또 여전히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본인만의 언어로 마음껏 예술과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재 활동 중인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비롯해 회화, 조각, 설치 등 폭넓은 장르의 미술을 아우르는 이야기를 통해, 그가 미술과 소통하며 생각을 넓히고 감정을 가꾼 순간들을 접하면서 우리를 붙잡는 미술의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이해 못 할 모순에 휩싸이거나 벗어나고픈 갈망을 마주할 때…
마음을 알아주는 미술을 만나다
삶 전반에서 미술과 가까이 지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술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마주하거나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준다. 곁에서 위안과 힘을 주는 미술의 면모는 여러 작가 및 작품과 교제한 조아라의 일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성을 쏟아 준비한 전시 개막 시기. 온갖 신경이 곤두선 찰나에 윤석남 작가의 바닥까지 팔을 길게 늘어뜨린 채 천장에 매달린 나무 조각 작품은 ‘닿고 싶지만 완전히 뛰어들고 싶진 않은 회피하고픈 마음’을 헤아려준다. 반복되는 육아에 지칠 때, 예술가 바이런 킴이 캔버스에 매일같이 그린 평범한 하루의 하늘은 사소한 오늘과 작은 노력에 숭고함을 일깨운다. 소심한 스스로가 갑갑할 무렵, 점과 선을 모아 자유로움을 구현한 박광수의 작품을 감상하며 작업 과정에 이입해보는 일은 해방감을 전해준다.
이처럼 조아라는 진공 상태가 아닌 자신의 현실을 바탕으로 미술을 감상한다. 지금의 상황과 감정에서 출발해 작품과 예술가와 만나며 섞인다. 진지하고 깊이 있게 미술과 소통하는 자신만의 화술을 드러내며, 미술과 친밀히 관계 맺고 동행하는 법을 일러준다.
순간이자 영원으로서 미술
그치지 않는 질문이 선사하는 새로운 순간에 대하여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와 정적인 인물 스케치로 현대 도시인이 소외감과 고독함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 그와 그의 작품은 광고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서 소개된 바 있어 사람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를 비롯해 반 고흐와 모네 그리고 인상주의 등등, 비교적 친숙한 작가와 작품 그리고 미술 사조는 비슷한 수사로 불리고 전달되기를 반복하면서 특정한 모습으로 굳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작가와 작품의 운명은 한때의 인상과 해석에 머물다가 새로운 작가 및 작품에 밀려 결국엔 잊히고 마는 걸까. 조아라는 이렇게 비관적이고 어두운 결말을 거부한다. 그 대신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과 팬데믹 상황과 연결지어 작품의 의미가 시의성을 띠도록 갱신한다. 또한 한 번 어쩌면 그 이상의 횟수로 접했을 법한 모네와 반 고흐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신화와 위인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통찰로 보편성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변하는 시대를 반영해 작품의 의미를 다시 쓰고 다른 입장과 관점에서 미술을 사유하며, 즉 질문을 그치지 않으며 미술이 끝없이 새로운 순간에 자리할 수 있게끔 한다.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어 주는 듯한 건초더미들. 시간대를 유추하게 하는 그림자의 모양과 색채의 변화. 이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사라진 ‘찰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이 시시각각으로 변해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의 ‘영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인상주의를 통해 수확하고 남은 건초더미가 비로소 회화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는 그것으로 순간과 영원의 이야기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_「건초더미에서 본 순간과 영원」 중에서
200자 요약
갤러리, 미술관, 박물관에서 10년 동안 미술과 엮여 일한 큐레이터 조아라의 에세이. 그는 “어떤 시대의 한 사람이 그려 낸 장면이 시공을 초월해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해 미술에 매료되었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큐레이터로 일하던 시절 그리고 일상 등 미술 곁에 머무는 동안 접했고 마음을 내주었던 작품과 예술가를 소개하며, 미술이 자신에게 말을 걸던 순간과 그 말을 들으며 미술에 붙들렸던 장면을 진솔한 언어로 풀어낸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질문을 던지게끔 하고, 새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미술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책 속에서
바이런 킴은 순간과 영원, 친숙한 일상과 광대한 우주처럼 언뜻 멀게 느껴지는 개념들을, 작품을 통해 연결하여 보여 준다. 그리고 그 특유의 방식으로 작품화된 결과물은 매우 시적이다. (...) ‘사소한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어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작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흘려보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붙잡아 무대의 중심에 세우는 태도,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것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하는 메시지. 이는 나의 사소한 오늘과 작은 노력을 숭고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위안을 준다. 나는 오늘도 습관적으로 하늘의 모습을 휴대폰에 남긴다. 그리고 함께 기록한다.
- 매주 일요일의 #하늘스타그램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면 이미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는 작가들과 직접 만날 기회도 많다. 특히 나는 내 또래의 작가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 그들의 끈질긴 도전에 항상 고개가 숙어지곤 했다. 변화나 도전 앞에서 소심한 나에게는 캔버스 하나하나가 새로운 도전인 그들의 삶이 항상 관찰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는 자주 상상한다. 흰 바탕 위에 첫 스케치나 붓 터치를 하는 작가가 되어 ‘대리 탐험’과 ‘대리 도전’을 하는 거다. 예술가가 만들어 낸 흔적이 켜켜이 쌓이고, 완성 단계에 다다르기까지 그가 경험했을 ‘해방으로 가는 과정’에 빠져든다. 그렇게 홀로 상상하며 그 경이로움을 만끽한다.
- 때론 헤매는 것도 괜찮아
부르주아의 작품에는 항상 모순적 은유가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 바로 〈마망〉이다. 청동으로 엮인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가 몸에 알주머니를 품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행인들이 조각의 안팎을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멀리서 주변 환경과 함께 조각 전체를 관망할 때와 작품 안에 들어가서 가까이 보고 느낄 때의 인상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주 멀리서 보면, 그 주변을 둘러싼 도시 풍경과 행인들이 만들어 내는 크고 작은 움직임 속에서 혼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존재하는 위용이 느껴진다. 하지만 거미 조각의 내부에 들어가 그가 품고 있는 하얀 알들과 꼿꼿하게 힘준 다리를 마주할 때는 온 힘을 다해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는 듯한 간절함을 느끼게 되어 안쓰러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 엄마 거미의 위태로운 위용
처절한 실패는 숨기거나 가릴 대상이 아니라, 드러내며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불의 눈부신 개와 비행선. 그녀의 이러한 작품은 아픈 사건들을 따뜻하면서도 냉정하게 돌아볼 때 우리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든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힌트들이다. 다양한 재료들과 의미 있는 사건을 엮어 빛나는 존재로 변모시키는 작가 이불만의 언어는 그 규모와 방식을 달리하며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 좌절을 빛으로 기억하기
엘리아슨의 작품 활동을 담은 ‘아티스트 북’의 제목이자, 그가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철학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당신의 참여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Your Engagement Has Consequences).” 작품을 만들고 제시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작품을 경험하는 관람자의 참여가 있어야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사회를 생각하는 관점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준다. ‘당신의 의견, 당신의 움직임이 내게는 너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예술에 어떤 사람이 등을 돌릴 수 있을까? 엘리아슨은 지금도 재료와 크기, 장르를 오가는 흥미롭고 다채로운 실험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항상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영리하고 아름다운 친구와도 같다. 우선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압도하고, 서서히 궁금하게 만들고,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그것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나를 새로운 영감으로 가득 채워 주기 때문에.
-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인상주의를 통해 수확하고 남은 건초더미가 비로소 회화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는 그것으로 순간과 영원의 이야기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신화나 위인이 아니더라도 지푸라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망막에 맺히는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인상주의의 인기에 더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 건초더미에서 본 순간과 영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내려오는 색색의 아름다운 빛줄기를 보며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듯, 다양한 컬러와 리드미컬한 제스처가 뒤섞여 한 폭의 장관을 만들어 내는 김미영의 화면은 누군가에겐 바람 부는 들판이고, 누군가에겐 눈보라 치는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작가 김미영이 만든 창문을 들여다볼 때마다 기억의 풍경과 마주한다. 어릴 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맡았던 아카시아 향기, 크로아티아의 어느 작은 섬에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 타던 스무 살의 어느 순간, 황금색 가을 들판 앞에서 아이와 물 뿌리며 놀던 날의 기억 등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너무 많은 힌트를 제공하지 않는 김미영의 추상화가 나를 오랜 시간 붙잡아 둔 이유다.
- 그림에서 바람이 불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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